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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픔을 녹이는 뻘건 국물의 힘… 난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달랬다
작성자 대표 관리자 (ip:211.224.24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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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16-11-25 1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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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39) 육개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늦은 밤 걸려온 전화에 온 가족이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그날 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충북 음성, 할아버지 시신이 있는 병원 영안실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몇 달 전 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할아버지는 트럭에 치여 식물인간이 되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본래 할아버지는 안광(眼光)이 강했다. 일제강점기에 유도 선수였기에 골격도 남달리 강건했다. 일흔 나이에도 매일 새벽 냉수로 목욕하던 당신이었다. 그러나 사고로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던 할아버지는 한겨울 희미한 숨을 거뒀다. 초등학생이던 나와 동생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웃음기를 빼고 영안실을 지키는 것도 힘에 부쳤다. 몰래 빠져나와 부산에서 볼 수 없던 하얀 눈 위에서 동생과 뛰어놀기도 여러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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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DB

배가 고프면 영안실 구석에 앉아 육개장을 먹었다. 하얀 일회용기에 국과 밥을 가득 퍼서 플라스틱 수저로 연신 그 뻘건 것을 퍼먹었다. 나는 그 육개장을 앉은 자리에서 몇 그릇을 먹었다. 고춧가루와 콩나물을 듬뿍 넣은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 몸의 냉기를 풀었다. 푹 익은 무의 달콤한 맛이 뒤를 받쳐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았다. 육개장을 끓인 친척은 장례식 내내 "잘 끓였다"는 칭찬을 여러 번 들었다. 도저히 한 그릇으로는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렇게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던 작은할아버지는 "손주가 이렇게 잘 컸으니 형님도 편하게 저세상 가셨겠네"라고 말하며 동생과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화장터 불꽃 속으로 들어가던 날, 육개장을 끓이던 가스불이 꺼졌다. 화장터는 복숭아 과수원이 있던 산기슭에 있었다. 영구차 운전기사는 오만원을 받고서야 시동을 켰다. 그 무거운 시신이 가마 속으로 들어갈 때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사람들 틈에서 아버지의 뺨 위로 흐르던 눈물을 보았다. 몇 시간 뒤 부산에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난생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과 육개장의 맛을 혼자 되뇌었다.

그 이후로 나는 육개장을 자주 먹지는 않았다. 맛있는 것이 아니면 아예 먹지 않겠다는 묘한 고집이 생긴 탓이었다. 지역적인 탓도 있다. 내가 자란 부산에서는 탕국 하면 돼지국밥인지라 육개장을 따로 사 먹은 기억이 없다. 집에서도 일부러 육개장을 끓이기에는 수고가 많이 들었다. 일 년에 하루를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의 부모는 고기 육수를 우리고 소고기를 결대로 찢을 틈을 내기 쉽지 않았다. 늦은 밤 하루가 끝나면 이른 아침과 함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며 급식과 식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스무 살이 넘어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다시 육개장을 먹기 시작했다.

시중에 육개장 잘하는 집을 찾자면 여럿이다. 사대문 안의 우래옥과 부민옥의 육개장이 그중 우선 손에 꼽힌다. 냉면으로 유명한 우래옥의 육개장은 단단한 구조감을 가진 냉면만큼이나 꽉 짜인 구성이 인상적이다. 국물은 무겁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풍성하게 들어간 고명에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흡족하다. 양무침 안주 하나 놓고 세상사 논하는 직장인이 늘 한가득인 부민옥의 육개장도 먹을 만하다. 다동에서 자라 다동에서 큰 이 집 주인장이 추천하는 메뉴도 육개장이다. 첫술에 시큰한 산미가 느껴지고 두 술에는 산뜻하고 칼칼한 풍미가 다가온다. 우래옥 것에 비하면 심심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자주 찾기 좋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육개장은 경상도식으로 끓여야 제맛이란 사람들이 있다. 원래 육개장은 '대구탕반'이란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대구를 위시한 경상도에서 그 맛에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래서 사실 '문배동 육칼'의 주인장도 대구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장은 "대구에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부산에서 왔다"고 시원스레 답했다. "그럼 이 집 육개장은 따지고 보면 부산식 육개장이네요?"라고 물으니 주인장은 "그런 셈이다"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주인장이 부산에서 올라와 용산 문배동에 이 가게를 연 지가 이제 37년이다. 재개발로 들어선 복합주상복합 단지 옆, 낮은 단층 건물에 간판만 새로 달았을 뿐 달라진 것은 세월밖에 없다. 그 간판도 디자인 전공한 조카가 만들어준 것이다. 처음에는 육개장 칼국수를 뜻하는 육칼이란 메뉴가 없었다. 주인장의 조카도 태어나지 않았다. "아니 어느 날 한 손님이 밥 대신 칼국수를 넣어보라고 하더라고." 반백의 주인장은 큰 목소리로 육칼의 기원을 설명하며 그릇을 날랐다. 잠시 후 내 몫의 육개장 한 그릇이 앞에 놓였다. 추운 바람을 파란 천 두른 텐트에서 난로에 손을 쬐며 견딘 내 몸이 육개장을 불렀다. 파를 듬뿍 넣어 달콤한 맛이 강하고 색이 붉지 않지만 화끈하게 매운 걸쭉한 국물은 '찬바람=육칼'이란 공식을 몸에 새길 정도로 중독적이다. 채소 육수에 삶은 칼국수 면은 아기 볼처럼 부드러워 속에 걸리지 않는다. 반 공기 담아주는 밥까지 말아 먹으면 남는 것은 반질거리는 스테인리스 대접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차가운 바람 부는 거리로 나섰을 때 겨울바람은 여전히 몸을 치고 돌았다.

근래는 육개장 프랜차이즈도 꽤 생겼다. 문배동 육칼도 지점을 여럿 냈다. 개로 끓인 '개장'에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썼다 하여 고기 육(肉) 자를 붙인 것이 시작인 이 음식은 오래 끓일수록 맛이 좋다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고온에서 살균 처리를 하는 레토르트 가공 방식에 적합하다.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가기에 어지간해선 맛없다는 핀잔을 듣지 않는다. 육개장 프랜차이즈가 많고 간편 조리 식품도 흔한 까닭이다. 그러나 내가 육개장을 먹기 시작한 것은 맛집도 레토르트 제품 탓도 아니다. 스무 살이 넘어 이따금 느닷없이 부고(訃告)가 들려오곤 했다. 몸을 부수는 슬픔 속에도 먼 길 온 객(客)을 먹이기 위해 누군가는 이 탕국을 끓인다. 눈물을 달인 것처럼 뜨겁고 진한 국물을 입안에 넣으면 아무리 허망하고 슬퍼도 먹어야만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생리가 원망스럽다. 남은 자는 먹어야 한다. 억지로 꾸역꾸역 밥을 국물에 적셔 입안에 밀어 넣는다. 없는 듯 비어 있던 위장이 서서히 차오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슬픔을 조금이나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지금이나 그때나 겨울의 창백한 하늘과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변함이 없다. 단지 근래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기업에서 끓여 나오는 차이가 있다. 상주들의 수고를 덜하고자 한 것이니 나쁘다고 할 이유는 없다. 장소가 장소이니 맛을 따질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말라비틀어진 편육 조각과 무미건조한 육개장을 앞에 두면 장례식장의 쓸쓸함이 더해져 울적해진다. 몇 달 전 대학병원 영안실에서 그런 육개장을 먹으며 그 옛날 겨울을 떠올렸다. 키가 컸던 할아버지의 너른 어깨도 보이는 듯했다. 나를 부르던 굵은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엔 종이컵에 담긴 소주 한 잔과 하얀 일회용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얼마간 혼자 앉아 미지근한 소주와 식은 국물을 먹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더 살고 또 한 명을 떠나보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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