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대사관과 글로벌 기업,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다양한 국적의 직장인들로 북적대는 광화문은 서울에서 뉴욕 맨해튼과 비교적 비슷한 지역일 것이다.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꼽히는 할랄 음식(halal food)이 광화문에 진출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이란 뜻이다. 할랄 음식의 사전적 의미는 이슬람 율법에서 무슬림이 먹어도 된다고 허용한 음식이다. 하지만 뉴욕에서 할랄 음식이라고 하면 할랄 가이스(The Halal Guys)라는, 한국인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 유명한 푸드트럭에서 파는 음식으로 통용된다.

이집트 출신 모하메드 아부엘레네인이 1990년 맨해튼 53번가에 첫 할랄 가이스를 열었을 땐 할랄 전문 푸드트럭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주인이 무슬림이니 자연스레 할랄 음식을 핫도그와 함께 팔았다.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한 방식대로 도축한 닭과 양을 중동 지역에서 흔히 먹는 향신료로 양념하고 요리해 밥에 얹거나 밀전병(피타빵)으로 둘둘 말아 팔았다. 뉴욕이나 서울이나 택시기사는 강력한 소문의 진원지. 값싸고 푸짐한 할랄 가이스의 음식은 뉴욕의 많은 무슬림 택시기사에게 사랑받으며 '푸드트럭 음식의 제왕'이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이달 초 광화문 D타워에 문 연 질할 브로스(Jil'Hal Bros)는 할랄 가이스 음식을 철저히 벤치마크한 테이크아웃 식당이다. 질할 브로스를 동생 김우식 대표와 함께 창업한 김준식 이사는 "질할은 '질 좋은 할랄'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지랄'과 발음이 흡사하다는 점도 분명 고려한 유머러스한 작명인 듯하다. 엄밀한 의미의 할랄 음식은 아니고, "할랄 스타일 음식"이라고 김 이사는 설명했다. 할랄 가이스에서 파는 것과 흡사한 음식을 낸다는 뜻이다.

큼직한 원통형 종이 소재 용기에 씌워진 플라스틱 뚜껑을 열면 토마토·양상추·길게 썬 피타빵·할라페뇨 고추가 보이고, 그 아래로 흰색과 붉은색 소스로 뒤덮인 밥과 고기가 있다. '치킨 오버 라이스(Chicken over Rice·6500원)'는 닭고기가, '램 오버 라이스(Lamb over Rice·7000원)'는 양고기가, '콤보 라이스(Combo Rice·7000원)'는 닭·양고기가 반씩 밥 위에 얹혀 나온다. 밥은 중동이나 인도에서 흔히 먹는 장립종 비스마티쌀에 사프란을 넣어 노랗게 지었다.

플라스틱 포크로 소스와 밥, 고기를 섞고 비비면 비스마티와 사프란 특유의 향이 솔솔 올라온다. 찰기 없이 풀풀 날리는 쌀이 입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미국에서 살다 온 지인은 "이런 쌀을 국내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플레인 요구르트와 사워크림 등을 섞어 만든 흰 소스는 크림처럼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면서 산뜻하다. 붉은 소스는 중동의 하리사와 태국의 스리랏차 소스를 섞은 듯한 맛으로, 한국 고추장처럼 단맛 섞인 찐득한 매운맛이 아니라 가볍고 묽고 직설적으로 맵다.

한 끼 식사로 적당한 양이나, 7달러(약 8300원)에 혼자서 다 먹기 힘든 할랄 가이스와 비교하면 아쉽다. 향신료 냄새도 약하단 평이 많다. 김 이사는 "한국인 입맛에 맞춰 향신료를 줄였다"고 설명했다. '오리지널' 할랄 가이스가 이태원에 곧 들어선다니 어디가 더 많은 한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지 궁금하다.

밥에 얹는 대신 피타빵에 넣은 '치킨 랩 샌드위치(4200원)' '램 랩 샌드위치(4500원)'도 있다. 주문 후 10분쯤 기다려야 음식을 받을 수 있으니, 전화로 미리 주문하고 픽업하는 편이 낫겠다.